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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시대의 착각…주택은 정치가 아니라 시장이 선택한다

by didim8204 2026. 7. 1.

대한민국의 지방은 지금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를 잃고 있다. 일부 군소도시는 이미 출생보다 사망이 훨씬 많은 자연감소를 넘어 청년층 유출까지 겹치며 도시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오랫동안 지방소멸을 경험해 온 일본보다도 더 빠르게 진행된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지방의 빈집 문제를 겪어 왔다. 현재는 빈집(아키야)이 900만 호를 넘어서며 국가적 과제가 됐다. 한국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지방 곳곳에서는 신축 아파트가 준공되기도 전에 미분양이 발생하고, 기존 주택은 비어가며,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몇 만 가구 공급"이라는 숫자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공급이 부족해서 지방의 집이 팔리지 않는 것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떠나는 도시에는 아무리 새 아파트를 지어도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주택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생활환경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아이를 보낼 학교가 있어야 하며, 병원과 교통, 문화시설이 갖춰져야 비로소 주거의 가치가 만들어진다.

얼마 전 발표됐던 전라권 초대형 반도체 산업벨트 계획은 많은 기대를 모았다. 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와 세계적 기업 유치가 강조되면서 지역경제를 바꿀 사업처럼 소개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용수 확보, 전력망 확충, 산업용지 조성, 협력업체 생태계 구축, 물류 경쟁력 등 해결해야 할 전제 조건이 적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기업은 정치적 선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은 사업성이 있을 때 투자한다.
반도체 공장은 전기와 용수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수백 개 협력업체와 숙련된 인력, 대학과 연구기관, 항만과 공항, 물류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산업 생태계를 무시한 채 기업을 지방으로 보내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왜 대한민국은 아직도 기업이 가장 효율적인 곳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보다 행정계획에 의존하려 하는가. 주택 역시 다르지 않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분양가는 수억 원 차이가 난다. 초등학교 하나, 지하철역 하나, 대형병원 하나가 주택의 가치를 결정한다. 같은 평형이라도 생활환경에 따라 가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주택의 가치는 건물이 아니라 입지가 만든다. 그런데도 정부는 입주자가 왜 그 지역을 선택해야 하는지보다 몇 세대를 공급할 것인지에 더 집중한다. 정치적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시장 수요와 산업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까지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 결과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분양이 증가하고, 빈집은 늘어나며, 지방 재정은 기반시설 유지비 부담을 떠안는다. 결국 그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온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연속성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고,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 도시계획도 바뀐다. 이전 정부가 수년간 준비한 사업이 정치적 이유로 수정되거나 중단되는 사례는 이제 낯설지 않다. 도시는 30년을 보고 계획해야 하지만 정치는 4~5년을 바라본다. 이 시간의 차이가 대한민국 도시정책의 가장 큰 약점이다.

해외 주요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일본은 지방소멸을 인정한 뒤 모든 도시를 살리겠다는 접근보다 거점도시 중심으로 기능을 집중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빈집은행 제도와 도시기능 집약 정책을 통해 관리 가능한 도시 구조를 만들고 있다.

독일은 산업단지와 연구기관, 대학, 주거를 함께 계획한다. 네덜란드는 신도시보다 기존 도시 재생과 교통망을 우선한다. 싱가포르는 철도와 학교, 병원, 공원을 먼저 계획한 뒤 주택을 공급한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주택을 먼저 짓지 않는다. 생활환경을 먼저 만들고 주택은 그 결과로 따라온다.

대한민국도 이제 발상을 바꿔야 한다. 균형발전은 전국에 똑같이 아파트를 나누어 짓는 것이 아니다. 지역마다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우고,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람은 일자리를 따라 움직이고, 기업은 경쟁력을 따라 투자하며, 주택가격은 그 결과를 반영한다. 이 순서를 거꾸로 하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도시는 살아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주택정책은 공급 실적을 발표하는 정책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 차원의 장기 도시계획을 수립하며, 산업과 교통, 교육, 의료를 함께 구축하는 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이다. 주택은 정치가 공급하는 상품이 아니다. 국민이 선택하는 삶의 공간이다. 정치가 숫자를 만들 수는 있어도,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는 숫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지방소멸을 막고 지속 가능한 국토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제는 '몇 만 가구 공급'이라는 성과 경쟁을 멈춰야 한다.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면 주택은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그것이 시장의 원리이며, 선진국들이 이미 증명한 도시정책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