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정상화 과정에서 사라질 제도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부동산 정책 논쟁을 넘어 대한민국 주거시장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전세가 사라지는 것이 정상일까. 그리고 그 이후 우리 사회는 무엇을 맞이하게 될까.
전세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한국형 주거제도다. 집주인은 목돈을 활용해 투자와 자금 운용을 하고, 세입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주거비로 거주할 수 있는 구조였다.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중산층의 자산 형성과 주거 사다리를 지탱해 온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집값 급등, 금리 변동, 전세사기, 대출 규제 강화 등이 겹치면서 집주인들은 점점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전세보증금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월세 수입이 훨씬 안정적이고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세가 사라질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약 6억8000만원 수준이다. 이를 전월세전환율로 환산하면 월세는 약 267만원에 달한다. 보증금 2억원을 남겨둔 반전세 형태로 전환하더라도 월세는 약 188만원 수준이다. 이는 단순히 주거비가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가정의 소비 구조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 전세 세입자는 소득 대부분을 소비와 저축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월세가 보편화되면 가계소득의 상당 부분이 매달 임대료로 빠져나가게 된다. 결국 소비 감소, 자산 형성 지연, 출산 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해외 여러 국가들이 이러한 문제를 경험했다.
독일 베를린은 임대료 급등으로 인해 월세 상한제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임대 공급 감소와 매물 잠김 현상이 발생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역시 임대료 규제 이후 신규 임대주택 공급이 감소하며 오히려 주거난이 심화됐다. 한국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일반화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주거 양극화다. 고소득층은 높은 월세를 감당할 수 있지만 중산층과 청년층은 점점 외곽 지역으로 밀려난다. 결국 서울 도심은 자산가와 고소득층 중심으로 재편되고, 청년과 신혼부부는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는 수도권 외곽으로 이동하게 된다.
두 번째는 결혼과 출산 감소다.
현재도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주거비 부담이다. 월세 부담이 지금보다 더욱 커진다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소비 침체다. 매달 200만~300만원의 월세를 부담하는 가구는 자동차 구매, 교육비 지출, 여행, 외식 등 대부분의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내수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네 번째는 노후 빈곤층 증가다.
전세 제도는 사실상 세입자에게 강제 저축 효과를 제공했다. 하지만 월세는 매달 소득이 소멸되는 구조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20~30년 후 고령층이 되었을 때 자산 축적이 부족한 대규모 월세 세대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이러한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월세 상한제나 임대료 규제 같은 시장 개입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미 유럽 여러 나라의 사례가 보여주듯 임대료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면 공급 감소라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공급이 줄어들면 결국 피해는 다시 세입자에게 돌아간다. 주택 시장의 핵심은 가격 통제가 아니라 공급 확대다.
전세가 줄어드는 것은 시장 변화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정상화'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파급력이 너무 크다. 전세의 종말은 단순히 하나의 임대차 제도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의 자산 형성 방식이 바뀌고, 소비 구조가 변하며, 결혼과 출산, 노후 준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모습이 달라지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세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 이후의 사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전세가 사라진 자리를 월세가 채우게 된다면, 그 비용은 결국 대한민국 중산층과 청년 세대가 평생 짊어져야 할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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