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모아타운, 가로주택정비사업, 소규모 재건축 등 소규모 정비사업이 새로운 주택 공급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이 수주하지 않는 사업장을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맡으며 도심 주택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용적률 완화와 행정 지원, 공공참여 확대 등을 통해 사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건설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공사대금 지급의 안정성과 보증제도의 신뢰성"이다.
건설업은 흔히 자금으로 시작해 자금으로 끝나는 산업이라고 한다. 설계와 기술, 시공 능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현장을 움직이는 것은 현금흐름이다. 철근과 레미콘, 창호와 전기자재, 그리고 수많은 기능공들의 인건비는 매일 현장에서 실제 현금으로 지출된다.
문제는 공사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도 보증기관이나 금융기관의 판단 하나로 자금 흐름이 갑자기 막히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사업 과정에서 조합 내부 갈등이 발생하거나 일부 민원이 제기되거나, 사업성 재검토가 진행된다는 이유만으로 보증 승인이 지연되거나 이미 승인된 자금 집행이 중단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한다.
대형 건설사는 수조 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과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통해 이러한 위험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중견·중소 건설사는 다르다.
단 하나의 현장에서 수십억 원 규모의 공사대금 지급이 지연되거나 PF 자금 집행이 멈추는 순간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한 현장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중소 건설사들은 공사비를 먼저 투입한 후 추후 정산받는 구조가 대부분이다. 자재비와 인건비는 즉시 지급해야 하지만 조합이나 시행사로부터의 대금은 수개월 뒤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보증기관이 갑자기 지급을 보류하거나 금융기관이 추가 담보를 요구하면 현장은 순식간에 자금난에 빠진다.
결국 피해는 건설사만 보는 것이 아니다.
공사가 중단되면 조합원은 입주가 늦어지고 하도급업체는 대금을 받지 못한다. 자재업체는 연쇄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현장 근로자들은 임금 지급을 걱정하게 된다.
건설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공사대금 지급의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 영국은 건설법(Housing Grants, Construction and Regeneration Act)을 통해 공사대금 지급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지급 거절 시 사유와 절차를 엄격하게 요구한다.
🇺🇸 미국은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에스크로 계좌와 공사대금 우선권 제도(Mechanic's Lien)를 통해 시공사가 정당한 대금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싱가포르는 건설산업보안법(Security of Payment Act)을 통해 공사대금 분쟁 발생 시 신속한 중재와 지급 명령 제도를 운영한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발주자나 금융기관이 일방적으로 자금 집행을 중단하기 어렵고, 시공사가 수행한 공사에 대한 정당한 대금은 법적으로 보호받는다는 점이다.
반면 국내 건설시장은 여전히 사업 참여자 간 힘의 균형이 크게 기울어져 있다.
특히 중소형 건설사는 공사를 수행하면서도 언제든 자금줄이 막힐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현장을 운영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철근 가격은 급등했고 시멘트와 레미콘 가격도 크게 올랐다. 기능공 인건비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 그러나 상당수 현장에서는 이러한 원가 상승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건설사가 적자를 감수하면서 공사를 수행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결국 시장에는 두 가지 결과만 남는다.
*첫째는 부실시공이다.
*둘째는 건설사의 도산이다.
어느 것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은 단순한 주택 공급 확대가 아니다.
*첫째, 공사대금 지급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정당하게 수행된 공사에 대해서는 보증기관과 금융기관이 임의로 지급을 중단하지 못하도록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분을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공사비 조정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넷째, 보증기관의 심사와 집행 과정 역시 외부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건설사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산업이 아니다.
국가의 주거 인프라를 만들고 도시를 발전시키는 산업이다.
특히 중소형 건설사들은 전국 수많은 지역에서 대형 건설사가 수행하지 않는 사업을 맡으며 지역경제와 고용을 지탱하고 있다. 이들이 무너지면 공급도 무너지고 지역경제도 무너진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빌려주는 것이 금융의 역할이라면,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순간 우산을 빼앗는 것은 금융이 아니다. 건설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사대금의 안전성과 보증제도의 신뢰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오늘도 수많은 중소형 건설사 대표들은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때로는 자신의 삶을 담보로 현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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