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의 본래 취지를 다시 묻는다 공공임대주택의 본래 목적은 분명하다. 시장에서 스스로 주거를 해결하기 어려운 청년, 저소득층, 고령자, 장애인, 신혼부부 등에게 최소한의 주거 사다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맞벌이 신혼부부의 행복주택 소득 기준을 월 763만원에서 939만원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물론 정부의 문제의식 자체를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 혼인신고를 하면 부부 합산소득 때문에 각종 주거 혜택에서 탈락하는 이른바 ‘결혼 페널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는 현실에서 신혼부부 주거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책 방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선순위다. 월 900만원 이상을 버는 맞벌이 부부까지 공공임대 입주 문턱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공공주택의 본래 취지에 맞느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며 이 동네 저 동네 청약을 찾아다니는 청년과 서민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공급 물량이 충분하다면 대상 확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공공임대, 청년임대, 신혼부부 특공은 늘 수요가 공급을 압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 기준을 높이면 정책 대상자는 넓어지지만, 실제 입주 가능한 사람은 극소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많은 사람이 신청할 수 있게 했다’는 홍보 효과는 생기지만, 정작 절실한 계층의 입주 가능성은 더 낮아질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도 신혼·청년층을 지원하지만, 공공임대의 기본 축은 여전히 저소득층 보호에 있다. 미국 HUD의 공공주택은 지역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저소득, 매우 저소득, 극저소득 계층을 구분한다. 일본 공영주택도 일반세대와 재량세대별 소득상한을 두고, 고령자·장애인·자녀양육세대 등에 일부 완화 기준을 적용한다. 즉 선진국도 가족 형성 지원은 하되, 공공임대의 핵심 원칙은 ‘시장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계층 우선’이다.
이번 정책의 가장 큰 위험은 공공임대가 복지정책인지, 혼인장려정책인지 경계가 흐려진다는 점이다. 결혼 장려는 필요하다. 그러나 결혼 장려를 이유로 공공임대의 우선순위를 흔들면, 정책은 공정성 논란에 빠진다. 월 939만원 소득의 신혼부부도 주거비 부담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월 200만~300만원 소득으로 월세를 내는 청년, 비정규직, 저소득 신혼부부와 같은 선상에서 공공임대 경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정책 설계상 신중해야 한다. 더 합리적인 방향은 따로 있다. 첫째, 공공임대는 저소득·무주택·주거취약 계층을 우선해야 한다. 둘째, 중상위 소득 신혼부부에게는 공공임대 입주권이 아니라 저리 전세대출, 이자 지원, 세액공제, 장기 고정금리 금융지원처럼 별도의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소득 기준을 높이더라도 공급 물량을 별도 배정해 저소득층 몫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넷째, 입주 후 소득이 크게 오른 가구에 대해서는 임대료 현실화나 일정 기간 후 퇴거 유도 장치도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제도 완화는 결혼 페널티를 줄이려는 취지는 있으나, 공공임대의 본래 목적과 충돌할 소지가 크다. 정책은 인기보다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공공주택은 표를 얻기 위한 보여주기식 혜택이 아니라, 시장에서 밀려난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주거 안전망이어야 한다. 그 안전망이 넓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작 가장 절박한 사람이 그물 밖으로 밀려난다면 그것은 복지가 아니라 정책의 역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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