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의 신규 분양 시장을 바라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한쪽에서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아파트가 청약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강남과 한강변, 그리고 주요 재개발 지역에서는 평당 분양가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준까지 치솟고 있다. 건설사들은 저마다 최고급 브랜드를 내세우며 프리미엄 경쟁에 나서고 있고, 청약 경쟁률은 여전히 수십 대 일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숫자 뒤에는 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청약에 당첨되었음에도 계약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년 동안 청약통장을 지켜오며 기다린 끝에 얻은 당첨이지만 막상 중도금 대출과 잔금 대출의 벽을 넘지 못해 스스로 당첨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예전에는 청약 당첨이 곧 내 집 마련의 출발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첨 이후가 더 큰 문제다. 분양가는 치솟고, 대출 규제는 강화되고, 금융기관의 문턱은 높아졌다. 당첨의 기쁨보다 자금 조달에 대한 걱정이 먼저 찾아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반면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주택이나 임대주택은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준다. 물론 공공주택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와 청년층, 신혼부부를 위한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조금 다르다. 역세권이라 홍보되지만 실제로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한참을 이동해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전철역은 행정구역조차 다른 지역에 위치한 경우도 있다. 지도상 거리와 실제 생활 속 거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출근길에는 한 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하고, 퇴근 후에는 다시 긴 여정을 반복해야 한다. 집은 마련했지만 삶의 질은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느 공공임대 단지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넓은 주차장과 잘 정비된 외관은 갖추고 있었지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천장 구석에 걸린 거미줄과 적막한 복도는 마치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니라 관리만 유지되는 공간처럼 보였다.
물론 모든 공공주택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직장과 가깝고, 아이를 키우기 좋으며, 생활 편의시설이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결국 주거란 건물이 아니라 삶의 동선과 공동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 정책과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 사이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 자료 속 숫자는 공급 확대를 말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집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부는 주거 안정을 이야기하지만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고, 신혼부부는 출산을 포기하며, 중산층은 평생 대출을 걱정한다. 어쩌면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두 개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수십억 원짜리 하이엔드 아파트가 완판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며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 간격은 단순한 가격 차이가 아니다. 삶의 기회와 미래에 대한 기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언젠가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는 시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에게 화성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서울에서 적당한 가격의 집을 찾는 일이 화성에 가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찾고 싶은 집과 실제 구할 수 있는 집의 거리는 지구와 화성만큼 멀어 보인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분양 광고가 아니다. 더 높은 분양가도 아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무리한 대출 없이도 접근할 수 있고, 직장과 너무 멀지 않으며, 가족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집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바뀌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10년, 30년, 100년 뒤를 내다보는 일관된 주거 정책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은 투자 상품이기 이전에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화성 이주 계획이 아니라 오늘도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의 집 한 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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