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거 시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근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큰 화제 중 하나는 압구정3구역 재건축 사업에 포함된 초대형 트리플렉스 슈퍼 펜트하우스이다. 공급면적 183평, 3개 층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구조, 개인 수영장과 카바나, 두 개의 옥상정원까지 갖춘 이 주택은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하나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사실 건설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초고급 주택을 짓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현대의 건축 기술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초고가 주거상품을 구현해 왔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내려다보는 초고층 펜트하우스, 런던의 하이드파크 인근 초고급 레지던스, 홍콩 빅토리아 하버의 슈퍼 럭셔리 아파트들은 이미 글로벌 자산가들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문제는 건축물이 아니다.
문제는 그 건축물이 시장에 던지는 가격 신호이며, 사회에 미치는 상징적 영향이다.
세계적인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저서 『The New Urban Crisis』에서 현대 대도시가 초고소득층과 저소득층으로 양분되는 현상을 "도시의 새로운 계급화"라고 설명한다. 그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런던, 토론토와 같은 세계도시에서 초고가 주택이 늘어날수록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가 붕괴되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분석하였다. 실제로 뉴욕 맨해튼의 초고층 펜트하우스들은 세계 부호들의 자산 저장고 역할을 하면서 주변 부동산 가격의 기준점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중산층은 도심에서 밀려나고 외곽으로 이동해야 했으며, 도시 내부의 소득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에서 자산 가격 상승이 노동소득 증가 속도를 장기간 초과할 경우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산 보유 계층과 비보유 계층으로 나뉘게 된다고 경고했다. 주택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자산이며,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압구정의 초고가 펜트하우스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초고가 펜트하우스 두 채를 구매할 수 있는 수요자는 대한민국에도 충분히 존재할 것이다. 수백억 원의 현금 동원 능력을 가진 기업가, 글로벌 투자자, 자산가들은 얼마든지 그 희소성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그 이후 발생하는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효과다. 하나의 거래가 새로운 기준점이 되고, 그 기준점은 다시 주변 단지의 가격 상승 논리로 사용된다. 재건축 조합은 더 높은 분양가를 요구하게 되고, 건설사는 더 높은 공사비를 주장하게 되며, 토지 소유자는 더 높은 보상가를 기대하게 된다. 결국 시장 전체가 상향 평준화되는 것이 아니라 상향 고가화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Future Shock』에서 사회 변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질 경우 다수의 시민들은 적응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직장인이 소득을 통해 집을 마련하는 속도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 속도가 훨씬 빠를 경우 시민들은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그 결과는 이미 세계 여러 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홍콩은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 가격을 기록하고 있지만 청년 세대의 주거 만족도는 매우 낮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세계 최고의 혁신도시 중 하나지만 교사와 경찰조차 도심 거주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런던 역시 초고가 부동산 시장 확대 이후 중산층의 외곽 이주 현상이 심화되었다. 대한민국 역시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한편에서는 수백억 원짜리 하이퍼 럭셔리 펜트하우스가 등장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청년층과 신혼부부가 전세자금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도시의 발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초고급 주택도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국민 다수의 주거 사다리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성장할 때 발생한다.
세계적인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건강한 도시는 다양한 계층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정 계층만을 위한 도시가 되는 순간 도시는 활력을 잃고 사회적 갈등은 심화된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고민해야 할 것은 압구정 펜트하우스를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초고가 주택 시장이 성장하는 동안 일반 시민들이 접근 가능한 양질의 주택을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한강 조망의 펜트하우스가 아니다. 누수 걱정이 없고, 출퇴근이 가능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고, 평생 모은 자산으로 마련할 수 있는 적정한 가격의 주택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단기 처방식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향후 50년에서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주거 전략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압구정 183평 펜트하우스는 대한민국 건설기술의 상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의 도시를 만들 것인지 묻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언젠가 서울은 극소수의 초고소득층이 소유한 하늘 위의 도시와, 그 아래에서 주거비 부담에 신음하는 다수의 시민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초양극화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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