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起) : 사라지는 전세, 불안해지는 서민 주거
서울 전세시장이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년 만에 30% 이상 감소했고, 일부 지역은 70~80%에 달하는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세수급지수 역시 5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수요자들은 더 이상 원하는 지역에서 적정 가격의 전셋집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재건축·재개발 이주 수요 증가, 신규 입주 물량 감소, 실거주 의무 강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서울 전세시장은 구조적인 공급 부족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한 핵심 대책으로 매입임대주택 확대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승(承) : 정부의 대규모 매입임대 공급 계획
정부는 수도권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내년까지 매입임대주택 9만 가구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서울과 경기 주요 규제지역에 6만6000가구 이상을 집중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매입임대주택은 공공기관이 민간의 기존 또는 신축 주택을 매입한 뒤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하는 제도다. 공공택지 개발이나 신규 택지 조성보다 공급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 단기적인 전세시장 안정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이를 위해 기존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사업장 전체를 매입해야 했던 방식에서 일부 세대만 매입하는 부분 매입을 허용하고, 최소 매입 기준도 서울 19가구, 경기 50가구에서 10가구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또한 기존 주택 매입 시 적용되던 준공 10년 이하 기준도 폐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확대하고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으로 보인다.
전(轉) : 그러나 시장은 왜 움직이지 않는가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LH가 체결한 수도권 매입약정 물량은 3217가구에 불과하다. 이는 연간 목표의 1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실제 약정 체결이 하반기에 집중되므로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최근 2년 동안 체결된 약정의 80% 이상이 하반기에 이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업성에 있다.
현재 비아파트 시장은 분양 침체와 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여기에 공공이 제시하는 매입 가격은 토지비와 건축비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공공에 공급하는 것이 일반 분양보다 수익성이 낮다. 반대로 정부가 매입 가격을 높이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재정 부담이 급격히 증가한다. 결국 정부는 낮은 가격으로 사고 싶고, 민간은 높은 가격에 팔고 싶어 하는 구조적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제도를 완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結) : 공급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경제성
전세난은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공급 목표 숫자만 늘린다고 시장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주택 공급은 결국 민간 사업자의 투자 의사와 수익성이 뒷받침될 때 현실화된다. 시장 원리를 무시한 채 공공이 공급 목표만 제시하면 계획은 남지만 실제 주택은 공급되지 않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매입할 경우 국민 부담은 커지고 정책의 지속 가능성도 약화된다.
결국 매입임대 정책의 성공 여부는 공급 물량 목표가 아니라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익 구조'를 얼마나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서울의 전세난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멸실 증가, 신규 공급 부족, 임대차 시장 구조 변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진 구조적 문제다.
정부가 진정으로 전월세 시장 안정을 원한다면 단순한 매입 확대를 넘어 민간 공급 활성화, 정비사업 정상화, 임대주택 사업성 개선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에 집중해야 한다. 전세시장의 불안은 숫자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