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이미 보여준 주거정책의 실패
최근 정부가 등록임대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을 축소해 매물을 시장으로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논리는 단순하다. 세제 혜택을 없애면 임대사업자가 보유 주택을 팔 것이고, 시장에 매물이 늘어나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에 몸담으며 수십 년 동안 시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이러한 접근은 문제의 본질보다 결과만 바라보는 처방에 가깝다.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의 핵심 문제는 등록임대가 아니라 절대적인 공급 부족이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임대주택을 줄이는 정책은 결국 임차인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우리 시장에서는 전세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대출 규제와 보유세 부담, 금리 변화, 임대인의 월세 선호가 맞물리면서 전세는 반전세와 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서울 곳곳에서는 월세 200만~300만원이 더 이상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주거비가 소득 증가 속도를 훨씬 앞지르면서 중산층과 청년층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구조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록임대 세제 혜택까지 축소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는 약 6만8000가구의 매물이 시장에 나온다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부는 매매시장으로 이동하겠지만 상당수 임차인은 계약 종료와 함께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한다. 이미 전세 물량이 부족한 시장에서 새로운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는 결국 월세시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결국 공급은 늘지 않았는데 임대 수요만 증가한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대로 수요가 늘고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은 오른다. 결국 월세는 더 오르고 전세는 더욱 귀해진다. 정부가 매매시장을 안정시키려던 정책이 오히려 임대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모습은 이미 유럽 여러 국가에서 경험한 과정과도 닮아 있다.
🇩🇪 독일에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임대료 규제를 강화했지만 신규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신축 월세는 크게 상승했다. 기존 세입자는 보호받았지만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청년들은 더 높은 월세를 부담해야 했다.
🇪🇸 스페인 역시 임대료 상한제와 강한 규제를 도입했지만 임대인들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임대주택 공급이 감소했고, 관광숙박이나 단기임대로 전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임차인이 구할 수 있는 일반 임대주택은 더욱 줄어들었다.
🇵🇹 포루투칼의 리스본 역시 비슷하다.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각종 규제를 시행했지만 공급 부족은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청년층은 도심에서 밀려나 외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심화됐다.
이들 국가가 보여준 공통점은 명확하다.
공급을 늘리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만 강화하면 가격은 잠시 멈추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큰 공급 부족과 더 심각한 주거 양극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 대한민국 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재건축과 재개발은 각종 규제로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공사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금융 규제는 사업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등록임대까지 축소된다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투기세력이 아니라 장기간 안정적인 임대주택일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피해는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집 한 채도 없는 세입자에게 집중된다.
주거비 부담이 커질수록 소비는 줄고 출산은 감소한다.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고 신혼부부는 내 집 마련을 포기한다. 자산을 가진 계층은 계속 자산이 증가하지만 무주택자는 월세를 평생 부담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유럽 여러 도시에서 나타난 주거 양극화의 종착점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시장 안정을 원한다면 세금으로 임대인을 압박하기보다 공급 확대에 정책의 중심을 둬야 한다. 재건축과 재개발 절차를 합리적으로 단축하고, 공사비 급등을 안정시키며, 민간 공급을 활성화할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등록임대 역시 일률적인 혜택 폐지가 아니라 장기 임대와 적정 임대료를 유지하는 사업자에게는 안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동산 시장은 단순히 세금을 올리거나 규제를 강화한다고 안정되지 않는다. 주택은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필수재이며, 공급이 부족한 시장에서 공급 주체를 줄이는 정책은 결국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지금 선택해야 할 것은 세금을 통한 단기 처방이 아니라 공급 확대를 통한 구조적 해결이다. 유럽이 이미 경험한 실패를 대한민국이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시장에는 규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정책이 필요하고, 국민에게는 처벌이 아니라 안정적인 주거가 필요하다. 그것이 부동산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대한민국 주거시장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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