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의학이 만나는 지점 흔히 건축은 단순히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공간을 만드는 기술로 인식된다. 그러나 현대 의학과 환경보건학은 건축물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대인이 하루 평균 80~90% 이상의 시간을 실내에서 생활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먹는 음식이나 마시는 물 못지않게 건축 환경이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최근에는 건축학과 신경과학, 환경의학이 결합된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까지 등장하며 공간과 건강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내 공기 질은 또 하나의 건강검진 결과표다
건축물 내부의 공기 질은 인간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실내 공기 오염 농도가 외부 공기보다 평균 2~5배 높을 수 있으며, 특정 환경에서는 최대 100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신축 건축물이나 리모델링 직후에는 마감재, 접착제, 합판, 벽지, 바닥재 등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과 포름알데히드가 배출된다. 이러한 물질은 다음과 같은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눈, 코, 목 점막 자극 두통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 비염 천식 악화 아토피 피부염 악화
의학계에서는 이를 "새집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설명한다.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친환경 건축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일반 건물 근무자보다 인지능력 점수가 높고 집중력 및 의사결정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결국 건축물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지속적으로 호흡하는 거대한 환경장치인 셈이다. 햇빛은 가장 강력한 무료 치료제다 의학적으로 자연광은 단순한 조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태양광은 우리 몸의 생체시계(CircadianRhythm)를 조절하며 수면, 면역력, 호르몬 분비를 관리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에 따르면 자연광 노출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증가할 수 있다.
*우울증 불면증 만성 피로 계절성 정서장애(SAD) 집중력 저하
특히 아침 햇빛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고 야간에는 멜라토닌 생성에 도움을 주어 수면의 질을 향상시킨다. 또한 영국 엑서터대학교(Environment and Behaviour연구팀)는 창문을 통해 녹지와 자연환경을 조망할 수 있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병원 건축 분야에서는 이미 이러한 사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환자 병실에서 자연을 볼 수 있는 경우 입원 기간이 짧아지고 진통제 사용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초고층 건물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초고층 건물의 증가는 현대 도시의 필연적 현상이지만 의학계에서는 일부 우려도 제기한다. 먼저 고층 자체가 건강에 직접적인 질병을 유발한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간접적 영향을 지적한다.
첫째,
심리적 거리감이다. 캐나다와 호주의 일부 연구에서는 고층 거주자가 저층 거주자보다 사회적 고립감과 우울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하였다.
둘째,
신체활동 감소다. 고층 거주자는 계단 사용 빈도가 감소하고 엘리베이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일상적인 신체활동이 줄어들 수 있다.
셋째,
응급상황 문제다.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응급의료진의 도착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응급의학회 연구에서는 초고층 건물에서 응급환자에게 도달하는 시간이 증가할수록 생존율이 감소하는 경향을 확인하였다. 반면 흔히 알려진 "고층에서는 산소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일반적인 아파트 높이에서는 의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30~70층 수준의 고도 변화는 인체 생리에 영향을 줄 정도의 기압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신경건축학이 밝힌 공간과 뇌의 관계 최근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신경건축학이다. 이는 건축 환경이 인간의 뇌 기능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신경건축학 연구센터와 여러 대학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높은 천장은 창의성 향상과 연관 자연 소재는 스트레스 감소와 연관 곡선형 디자인은 심리적 안정감 증가 과도한 소음은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녹색 계열 색채는 긴장 완화 효과 특히 병원과 치매센터 설계에서는 이미 이러한 원리가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실제로 환자의 회복률과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건축 설계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건강한 건축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건축은 더 이상 단순한 부동산이나 구조물의 문제가 아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건축물은 인간의 호흡기 건강, 심혈관 건강, 정신 건강, 수면의 질, 면역력, 심지어 인지기능까지 영향을 미치는 생활환경의 핵심 요소이다. 좋은 건축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이 아니라 건강을 보호하는 건축이다. 앞으로의 건축은 얼마나 높게 짓느냐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인간은 건축물을 만들지만, 결국 건축물은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을 다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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